ㆍ생성과 소멸(1990년대)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 텍사스에서 보냈다.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에 적을 두고 그곳 스튜디오를 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시작했던 작업들은 추상표현적인 작업들이었다.
비판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던 20대의 사고들은 출산이라는 과정과 생명과의 만남으로 조금씩 변해갔고 그러면서 나의 작업도 변하게 되었다. 이중구조라는 서로 다른 세계의 공존을 표현해 왔던 이전의 회색조의 작업들이 원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아이의 시각이 내 안에 깊숙이 자리한 '아이 되기'를 꺼내는데 한 몫 했다. 주변이 불안하고 여의치 않고 힘들수록 내 안으로 파고들게 되었다. 당시의 그림은 불안감과 행복감의 충돌이 그대로 드러났다.
세상의 축소판인 장난감을 아무 힘이 없는 순수한 어린아이가 맘대로 주무르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아이와 난 무척 교감이 잘 되었고 그의 순수한 시각이 가장 힘이 있음을 보며 '장난감'이라는 소재가 등장했다. 무시간의 공간 속에 부유하는 사물들로 표현한 작품의 주제들은 탄생, 생성과 소멸, 차이, 생명나무, 길, 존재 등이었다.

ㆍ셀수 없는 세계(2000년대)
한국에 돌아온 후 한동안 아팠다.
가족들과의 타국 생활이 힘들었었나 보다. 돌아와서의 현실도 녹녹치 않았다.
그러던 중 전시가 주어졌고 작업을 시작하며 몸도 회복되었다.살아내야 할 현실의 장벽들이 나를 또다시 상상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한국에 돌아와서부터 작업은 또 변화했다.컴퓨터게임을 하듯 가상의 공간 속에서 상상의 세계를 펼치고 싶었다.
그리고 가상의 공간에 여러 아이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부유했다.그것들은 각자가 단어처럼 존재한다. 그림의 어느 부분을 잘라도 얘기가 된다. 한 화면 안에 여러 이야기가 동시에 공존하기를 의도했다. 그것들은 하나의 기호의 역할을 한다. 이 당시의 작업부터 조금씩 복잡해진다. 복잡하게 밀착된 물체들은 나의 삶을 그대로 드러낸 결과물이다. 단어처럼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무수한 이미지들을 쏟아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 시기의 주제는 마음 풍경, 조우, 다른 세계로의 여정 등이다. 끝없이 꿈꾸며, 놀이하며 이런저런 세계들을 캔버스에 만들었다.

ㆍ몰입의 낙원(2010년대)
다사다난한 현실속에서도 계속해서 작업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 날들이었다. 초기에는 색채는 더욱 풍부해졌고 복잡한 화면 구성도 극에 달했다. 마치 축제가 벌어진 것 마냥 오브제들을 한가득 쏟아 부었다. 중반쯤부터 그런 작업들이 조금씩 정돈되고 구체적인 형태도 변형되었다. 내가 하는 '그리기'는 몰입 그 자체이며 그 속에서 나는 진정한 나와 만난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껍데기는 필요 없다. 진실된 그 자체와 합일되는 것이 나에게는 전부다. 그동안 유기적인 것, 구조적인 것, 원형, 입체 등 몇 가지 유형의 작업을 했다. 나는 밑그림이 없다. 큰 그림의 시작을 하얀 캔버스에 연다. 그리고 그려 나간다. 끝날 때까지 곡예를 하는듯 하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온다.
후반에는 'prototype' (원형:근원적 형태)에 대한 갈망으로 작업에서 새로운 이미지가 나오고 있다. 입체적 공간 탐구, '원형'의 풍경 등. 여전히 나는 내 안에서 나오는 색들과 수많은 파편 같은 조각 이미지들을 퍼즐 맞추듯이 그려나가고 있다.
계속 다른 세계를 향해 커넥팅하고 있다. 하나의 그림은 그 다음 그림으로 연결되며 원형을 찾는 여정을 한다.
이 모두는 연결된 세계이며 앞으로도 그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