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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작가 이종민은 현실 속에 담담하게 놓여있는 사물들을 표현하였다. 그가 이전의 전시를 통해 보여주었던 사람들의 뒷모습은 작가의 감성을 다소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모티프였다. 흔히 말하듯 사람의 뒷모습으로 그 사람의 내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클로즈업된 일상의 사물들이 놓여진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이 구획됨으로써 드러나는 색면의 조형성이 먼저 다가온다.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프레스코기법으로 인해, 고즈넉한 색감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는 색의 층들을 겹겹이 쌓아나간 후, 그 층을 조심스럽게 벗겨내어 드러내는 과정으로 생성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흙, 분채와 석채가 혼용되면서 깊은 물성의 질감이 부각된다. 이처럼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은은한 색감은, 작가가 좋아하는 분청사기의 마감과도 유사하다.
한편 그의 정물들은 따뜻한 흙의 물성을 간직한 채, 캔버스 안에서 또 다른 현실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일상의 사물들이 놓인 공간은 매우 차분하고 명상적이다. 그런데 그들이 놓여진 공간 뒤편으로는 확장된 공간이 펼쳐짐을 느낄 수 있다. 예를들어 그의 작품 <나비>에서, 후경의 색조는 마치 유채꽃이나 개나리꽃을 연상시키면서, 부드러운 유선의 라인을 동반하다. 이것은 바로 나비의 움직임, 날개의 팔랑거림을 조형화한 것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나비는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보는 이는 나비의 움직임 반경을 따라 점차적으로 그 공간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도해>라는 작품에서도 우리는 전경에 보이는 찻잔 뒤로 달빛을 가득 머금은 다도해를 목도한다. 그 초록빛은 일상의 사물인 칠판의 색이자, 바다의 물빛이다. 즉 교탁, 책, 찻잔 등과 같은 일상의 정물들과 현실너머의 공간이 한 화면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후경의 공간이 칠판에 그려진 낙서이자 그 너머의 공간을 상징하듯이, 현실과 상상의 공간은 화면에서 끊임없이 교차한다. 즉 현실속에서 누군가가 그려놓은 듯한 낙서가 또 다른 공간으로 우리의 시선을 이동시키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현실 속의 사물들은 삶의 무게를 상징한다. 마치 카타콤벽화에 그려진 도상들의 상징성처럼.
그렇다면 이 현실의 사물들 너머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림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희망을 담아내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넓게 펼쳐진 공간은 내면으로 열린 공간, 지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초감각적인 공간을 나타낸다. 작가가 이 사물들을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점에서 그린 것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작가의 인품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낮은 시점에서 일상을 바라봄으로써 상상의 영역은 더욱 무한하게 펼져질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우리의 시선을 고즈넉한 정물에서 캔버스 안으로 깊이 이끌고, 무한하게 펼쳐진 공간으로 초대한다. -김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