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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화의 조각세계: 일상과 네거티브의 공간미학
철학박사 김승호(미술사학)

최태화는 눈으로 파악하기는 쉽지만 단어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조각세계를 추구한다. 이탈리아의 평론가 렌조 페데리치가 작가의 작업을 “세계를 향한 실존적 비전처럼, 긍정과 부정, 실재와 비실재의 이러한 교체변화”라고 지적하였듯이 작가는 종교와 조각, 생활 공간과 예술 공간, 정신과 물질이 만나는 지점을 담론으로 이끈다. 그녀의 작품은 우리에게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와 고되고 어려운 미학이 어떻게 담론을 이루고 있는지 의문을 던지게 만들고, 동시대 조각에서 그가 일구어낸 조각적 담론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찾아보라고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와 이탈리아의 비평가들은 그녀의 작업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일상과 네거티브 미학의 담론을 제외하고 있어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녀의 작품이 지나가는 미적 담론의 행보를 추적해보자.
최태화의 작품은 네거티브 볼륨으로 이야기 공간을 제시한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사물이나 장식품 제작에 행해지는 전통적인 네거티브 방법은 모더니즘의 종말이 대두되던 1960년대 공간문제가 대두되면서 조각에서 부각하기 시작했다. 현재 국제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는 애니시 카푸어도 네거티브 볼륨의 중요성을 드러낸 경우로, 네거티브 미학은 모더니즘에서 이탈하여 조각공간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공간의 부재가 실재(real)로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케 한다. 카푸어가 볼륨을 대칭으로 하여 물질과 비물질과의 관계를 모색하였다면, 최태화의 조각세계는 주변 환경의 변화를 담아내어 현실의 요구에 부흥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작품에 묻어난 일상적인 사물, 가톨릭적인 형태, 한국적인 삶의 공간, 그가 거주했던 이탈리아의 생활공간에서 확인된다. 이는 “절충주의” -이탈리아 비평가 디노 바스탈리가 명명한-가 아니라 오히려 진보를 추구하던 모더니즘 미술을 분석하고 조각공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이렇듯 공간과 모더니즘에 대한 작가의 분석이 서사의 중심에 서고, 그리고 서사의 주체는 네거티브 볼륨의 정당성과 미학적 타당성을 입증하게 한다. 전통적이면서도 해석의 다양성을 담고 있는 볼륨의 제작방식은 공간을 창조하고 창조된 공간이 관찰의 대상이 되어 미학적 세계를 확장시킨다. 최태화의 미학적 네거티브는 한국과 유럽, 전통과 현재 그리고 공간의 현존과 부재, 현대미술의 분석과 해석은 담론을 형성하여 어렵고 힘든, 그러나 변화의 정당성과 타당성이 함께하는 노정이 아닐 수 없다. 작품의 존재방식에 대한 고민이 지속하는 한 이 노정은 구체화 될 것이라는 전제를 담보하고 있다.
최태화는 왜곡되고 파편화된 인간의 형상을 내러티브 공간에서 가시화 한다. 작가의 작업이초현실주의적인 조각과 입체주의적인 회화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이유이며 딱딱하고 분석하기 어려운 미학에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는 작지만 섬세하고, 일상적이지만 독특한 이야기의 구조는 1980년도에 들어와 본격화 한다. 현재는 건축, 기념비, 풍경 등에 인간 형상이 네거티브 볼륨으로 시각화 되어 이야기의 구조는 다변화 되었다. 이렇듯 작가는 공간을 비우고 드러내는 과정의 연속에서 자아를 일상적인 삶의 변화에 투사한다. 경험에 자리한 인간의 형태가 파편화되어 네거티브 제작방식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이끌고, 볼륨의 세계에 이미지가 첨가되어 공간의 이야기는 관찰의 대상이 된다. 이렇듯 작가는 우리를 현실의 이야기를 볼륨에서 확인하고 미학적인 노정을 공간에서 경험하도록 유도하여, 우리 스스로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제작방식의 타당성과 자아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미지의 정당성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이미지가 연상되는 이유가 관찰자의 미술사 지식에 근거 한다면, 내러티브한 공간성은 한국과 유럽의 일상성을 회상하게 하여 다양한 이해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다양성은 정당한 것이기도 하다. 일상인지 아니면 미술사인지 어디에다 더 무게를 둘지에 대한 고민은 관찰자의 몫이지만, 최태화가 인간의 형상으로 일상의 변화와 커뮤니티를 추구하고, 네거티브의 볼륨공간으로 미술의 역사에 발을 담아놓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조각가 최태화는 네거티브미학과 일상공간의 담론에서 끝없는 자기 수양을 하고 있다. 네거티브미학의 역사에서 수양의 방식을 모색한 그는 마르지 않는 창조의 근원을 일상에서 찾았다. 그 역사가 살아있고 일상이 지속되는 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싶은 작가의 욕망은 끊이질 않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걸어온 그녀의 이야기가 미적으로 경험되는 특별한 장이 될 것이다. 모더니즘미술에서 제외되었으나 일상에서 충족된 공간과 형상의 내러티브가 우리의 시선을 유혹한다.